2009년 11월 13일
방금 볶은 커피가 맛있다? (MBC 뉴스후의 삽질)

어젯밤 뉴스후 '커피 한 잔의 진실'에 등장한 '의문의' 커피전문가 허형만씨가 용감하게 하신 말씀이다. 예고편에서 공정무역을 들먹이며 한국 커피가격의 진실을 파헤친다기에 시청했으나 허씨의 이 한 마디에 과감하게 '해피투게더'로 채널을 옮겼다. 모든 음식은 숙성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밥은 뜸을 들여야 차지고, 소금 따위의 기본 양념도 일정 시간이 지나야 음식에 제대로 스며든다. 그런데 커피는 갓 볶은 게 맛있다니, 이건 대체 어느 나라 이론인가.
푸르딩딩한 생두를 적정 온도에서 볶아주면, 풀냄새가 사라지며 점차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원두의 종류 및 배합에 따라 로스팅 시간이 다소 다른데, 어쨌든 볶는 이가 원하는 시점에 가열을 중단하고 곧바로 원두를 식히면 된다. 하지만 로스팅을 마쳤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커피향이 나진 않는다. 본래의 풀냄새만 사라졌을 뿐, 진한 커피냄새가 발산되기까진 짧게는 2일에서 3일이 소요된다. 허씨의 이론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볶아진 뒤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1년 유통기한'짜리 원두들은 죄다 '맛없고', '오래된' 제품이다. 그 분이 엉터리가 아니라면 이탈리아 원두를 사 먹는 전세계 사람들이 바보인 셈이다.
뉴스후에는 허씨 외에도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인정했다는 '정체불명'의 커피 전문가가 한 명 더 등장해, 원두 표면에 생긴 기름으로 원두의 신선도를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원두 표면에 기름이 생기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가 로스팅을 강하게 했을 경우이고, 둘째가 로스팅한 원두를 1주일 이상 용기에 보관했을 경우다. 원두를 몇 달 이상 장기보관하면 기름이 다 말라버리므로 원두 표면의 기름으로 커피의 신선도를 판단할 수 없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원두에서 기름이 묻어나면 마치 신선하지 않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는 건, 스스로의 전문성을 갉아먹는 꼴밖에 안 된다.
한국의 커피가 비싼 건 맞다. 커피문화가 커피 전문점 위주로 왜곡되어 있는 건 더 큰 문제. 하지만 비판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인터넷만 조금 조사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을 왜곡한다는 건 기자와 제작팀의 미숙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전문성이 의심되는 전문가를 내세우고 공정무역 커피 관련 화면 몇 개 갖다 붙여서 무슨 1시간짜리 시사프로그램을 만든단 말인가.
PS. 마지막으로 스타벅스에 대해 개인적 호오가 분명히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때 스타벅스 매장에서 사용되는 원두의 향이나 신선도는 나름 괜찮은 수준이다. 표면에 껴 있는 기름으로 판단했을 때, 볶은지 3개월 이상 된, 못 먹을 원두는 아니란 말이다. 단, 봉지로 판매되는 원두는 매우 신선도가 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