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27일
여행기는 여행기다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은 여행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기 경험을 정리하는 글? 다른 사람에게 두루 읽히고픈 자신의 경험담? 후배 배낭여행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사연들?
의문이 들었다. 사실적이고 권장할 만한 여행기라는 게 대체 뭡니까?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이야기라는 건 한가지 욕망에서 튀어나오는 단품 같은 게 아니다.
이런 점에서 괜찮은 글이 저런 점에서 안 괜찮을 수도 있고, 이 모든 걸 떠나 그저 개인적인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다.
여행기가 법전인가?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에서 한치라도 벗어나면 안 될까? 후배 여행자들이 따라 하기 쉬운 치기 어린 사연들은 모조리 배제해야 할까?
맞다. 위험이 닥칠 수 있는 일을 태연하게 행한 과거를, 모험담처럼 늘어놓는 게 100% 현명한 짓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에피소드만을 똑 떼어내 그들이 후배 여행자들에게 잘못된 과오를 범하도록 조장했다고 주장하는 게 옳은 말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내겐 후자가 더 위험하게 다가온다. 타인이 힘들여 쌓아놓은 경험치를 몇마디 말로 손쉽게 무너뜨리려 한다는 점에서. 게다가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이용해 그들의 유명세에 도전함으로써 주변인들에게 주목받으려 하는 이상한 욕망 같은 게 읽힌다. 그러니 글의 마지막이 대개 다 그런 식인 거다. 내가 어딜 여행했는데... 나의 여행 경험은... 나는 누구로써...
시기에 따라 유행하는 것들이 있다. 류시화의 책이 유행하던 시절 한국은 이상한 인도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류시화의 글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지적하는 건 무척 쉽다. 이미 너무나 많이 했으니까. 사기꾼이라고 몰아가기도 쉽다. 이미 너무도 많이 했으니까. 그런데 그의 책 자체가 그런 식인 거다. 환상과 사실이 마구 뒤섞인 스타일인 거다. 그걸 허구라고, 단적으로 거짓말이라고 몰아가야 할까.
명상가 혹은 그런 컨셉의 작가가 써내려간 환상적인 글을 보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따진다면 그게 헛수고 아닌가. 그 책 어디에 '100% 진실에 기반한, 인도 여행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들고 다니면서 가이드북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여행기'라고 적혀 있나. 그건 글의 컨셉 자체를 오독하는 거다. 허구와 과장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책을 원하는 사람은 그걸 안 보면 되는 거다.
이미 읽어버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냥 과거 내 취향이 싸구려였거니 하면서 스스로를 원망하는 수밖에.
어쨌든 책이라는 건 팔아먹으려고 내는 거다. 어쩔 수 없다. 상품이다. 책 커버나 날개에 적혀 있는 소개글 좀 읽어보시길. 읽고 나서 하나도 동감 못할 내용 수두룩하다. 요즘 나오는 책들이 더 심할 거다. 영화 개봉할 때쯤 그 영화의 원작 책 번역되고, 유명인을 내세워 기획된 책들은 광고도 많이 한다.
지금 마케팅으로 안 이뤄진 게 어디있나. 영화도, 심지어 예능프로그램도 개봉하거나 전파 타기 전 주요 내용을 인용한 보도자료를 보내는 시대다. 상품을 띄우려면 마케팅은 필수다. 물론 독자가 농락당했다 느낄 만큼의 허구나 과장은 피해야겠지만. 그런데 한비야와 류시화의 글은 그 정도는 아닌걸?
물론 죽어라 싫은 여행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의 문제다. 거기에 책임감 따위까지 바라지 마라.
책은 그저 책일 뿐이다.
# by | 2009/08/27 00:04 | Pensamento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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