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쓰러지는 병사'가 다시 조작설에 휘말렸다. 그동안 '쓰러지는 사람 주변에 다른 병사들이 없다', '총알을 맞은 흔적이 안 보인다' 등 사진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이번엔 좀 더 과학적인 분석이 나왔다.
의혹을 제기한 이는 스페인 바스코 대학의 호세 마누엘 수스페레기 교수(커뮤니케이션학). 이미 여러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이기 때문에 간단히 사진을 통해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사진 출처 :
http://www.dailymail.co.uk)
↓카파가 동일한 날에 찍은 세 장의 흑백사진이다. 약간씩 각도는 틀리지만 배경을 비교해보면, 같은 장소임이 분명하다.
↓아래 컬러사진은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Corboba)의 에스페호(Espejo)라는 마을로, 카파가 사진을 찍었다고 밝힌 세로 무리아노와는 무려 55km나 떨어진 곳이다. 과거에 비해 나무가 많아지긴 했지만 배경의 주요지형들이 카파 사진의 그것과 일치한다.
'쓰러지는 병사'의 조작 논란과 관련해 촬영장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수스페레기 교수가 주장하는 코르도바 에스페호 지역에서는 스페인 내전 당시 교전이 전무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교전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쓰러지는 병사'가 나올 수 있냐는 이야기다. (아래 사진을 보면 카파가 말한 촬영장소와 수스페레기 교수가 발견한 지역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의외로 수스페레기 교수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의견들이 꽤 있다. 그 중 하나가 '쓰러지는 병사'와 같은 롤에 담겨 있던 사진들이 대부분 병사들의 휴식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아래가 같은 롤에 담긴 사진 중 하나인데, 교전 중의 군인과는 거리가 멀다. 같은 롤에 담겨 있었다면 분명 동일한 시간대에 촬영됐을텐데, 다른 사람들이 여유 있게 포즈를 취하는 사이 어떤 이는 총에 맞아 쓰러지는 풍경은 무척이나 생경하다.
반면에 조작설과 관련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의견도 있다. 일부에서는 '쓰러지는 병사'의 포즈를 쉽게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동일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은 이도 있다(아래사진). 하지만 멀쩡한 상태에서 넘어지려다 보니 다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적어도 카파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의 다리에선 인위적으로 지탱하려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쓰러지는 병사'의 몸에 특별한 외상이 없다는 점을 수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공개처형 장면을 담은 아래 사진을 보면, 사람이 총에 맞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에서 반드시 상처가 발견되는 건 아닌 듯하다.
'쓰러지는 병사'와 관련해 조작 의혹은 많지만, 촬영 뒷얘기를 전하는 기사는 별로 없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개를 찾았는데, 그 중에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el mundo)가 작년 10월 16일에 보도한 내용에 몇 가지 참고할만한 사실들이 있다.
로버트 카파의 미공개 작품 전시회를 앞두고 작성된 이 기사에서, 전시회를 주최한 영국 바비칸(Barbican) 센터는
'쓰러지는 병사' 촬영 당시 카파 옆에 그의 약혼녀 게르다 타로(Gerda Taro, 독일인, 종군 사진기사)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카파의 사진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촬영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병사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흥에 겨워할 정도로 여유 있는 시점에 촬영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신기하게도 바비칸 센터의 의견과 수스페레기 교수의 주장 사이에 일치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카파의 사진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촬영되진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베트남 전쟁을 기록하기 위해 전장에 갔다가 지뢰를 밟아 사망한 카파의 '기자 정신'이 근본적으로 훼손될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쓰러지는 병사'의 조작설이 한층 설득력을 얻게 됐다.
개인적인 생각에 카파가 한 병사를 촬영하려던 순간, 오발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매복해 있던 소수의 저격수들한테서 공격받는 병사의 모습을 운좋게 포착한 것일 수도 있겠다.